성장과 행복
작성자 : 윤여선 조회수 : 969
등록일 :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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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과 행복

                                                         윤여선

 

어떤 종류가 되든지 땅에 식물을 심고 그것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작은 재미 중 하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내게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보아 온 모습이지만, 이를 직접 체험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사는 곳의 구청에서 교외에 만든 주말농장의 한 귀퉁이를 빌려 이런저런 푸성귀들을 심고 가꾸면서, 생물체의 성장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돈벌이를 위한 영농이라면 많은 노동으로 인하여 이러한 재미를 즐길 여유가 없겠지만, 작은 텃밭이기 때문에 자라나는 식물의 생장 과정을 가까이 관찰하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주말농장과는 별도로 작년 이맘때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놓은 작은 옹기 그릇 두 개에 이런 저런 종류의 물고기들을 넣어 기르고 있는데, 이 또한 적지 않은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처음 얼마동안은 양식에 대한 무지와 게으름으로 물고기들을 많이 잃었다. 먹이 주는 것과 물 갈아 주는 일, 그리고 겨울에 물 온도 맞추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열대어 등 물고기 기르기에 익숙해지고, 이에 따른 재미도 늘어나게 되었다.

 

취미삼아 여러 종류의 꽃이나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이유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귀여움이 주는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말들 하지만, 내게는 그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 큰 재미이고 즐거움이다. 작은 씨앗이나 모종이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점차 크게 자라나는 과정은 즐거움은 물론 자연의 신비로움마저 마음 가득 안겨준다.

 

자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긍정적인 변화로 자기 자신과 이를 지켜보는 다른 객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말농장에서 자라는 토마토와 상추 등 푸성귀나 물고기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은 미약하게나마 이들의 성장을 통하여 내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성장이 행복의 요소로서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안나브론스키는 성장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눈다. 결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둘의 사랑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행선을 긋는 사랑으로 인하여 안나는 절망에 빠지고, 마침내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짐으로써 불행한 사랑을 마감한다.

 

톨스토이는 다른 주인공 레빈의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작품을 마무리한다.

나의 생활 자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 순간 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의 정신적 대변자 역할을 하는 레빈은 키티와의 결혼에 성공함으로써 성장하는 사랑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매 순간 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탈리아의 카를로 콜로디가 쓴 동화의 나무인형 피노키오가 느끼는 불행은 자신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다. 이 절망감으로 인하여 그는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일으키며, 제페토 영감과 귀뚜라미를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운명에 저항한다.

이러한 피노키오였기 때문에 요정으로부터 성장을 허락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행복해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라고 싶어도 자랄 수 없는 숙명 속에 갇혀버렸던 피노키오에 비하여, 시간과 함께 육체가 자라고, 노력하면 내면의 성장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우리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그것이 자신만이 보듬고 간직한 내면의 성장이든, 겉으로 드러나 남의 눈에 띄는 외적인 성장이든,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중 더 바람직한 것은 역시 내면의 성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외적인 성장은 스스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마치 만개한 꽃이 언젠가는 무심한 바람에 쓸려 가지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이에 반해 내적인 성장에는 한계가 없으며, 이 성장의 과실은 영원히 소유되고 지속되는 것이다.

 

오늘 최선을 다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낫게 살자. 오늘 하루 1달러를 저축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1달러가 더 많은 것이다. 단어 하나를 더 외우면 내일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갖자. 왜냐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므로.”

재미교포로서 미래부 장관 물망에 올랐던 젊은 인사의 말인데, 이보다 더 성장의 의미를 적절히 표현한 말은 없을 것 같아서 한 번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