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찾은 행복
작성자 : 윤여선 조회수 : 214
등록일 :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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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龍仁)에서 찾은 행복

 

윤여선(관세사/관세법인 흥신)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 자식들이 독립해 나간 후, 어떠한 부담이나 구속 없이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보겠다는 결심이 서고 부터였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을 말년의 정착지로 택한 것은, 정년퇴직이나 사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친구와 선배들이 하나 둘 서울을 떠나 자리를 잡은 곳 중에 유난히도 용인이 많은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로서 오랫동안 같은 기도모임 멤버이기도 했던 그들은 용인이 말년의 정착지로 어떠한 평안함을 주는지에 대해 열 올려 설명하며 내게 이주를 권했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미화하기 위해 여러 곁가지를 주워다 붙인 점도 있겠지만, 실제로 모임 참석차 내려갈 때 보곤 했던 용인 변두리의 모습은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가 본 면소재지 거리들을 연상시킬 정도의 평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사회인으로 발을 딛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 거리 어디엔가 살아 계시고 오래 전에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집 문간에서 서성이고 계신 듯한 그러한 그리움과 기대가 주는 평온함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 중에 나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언제나 하나의 가슴앓이처럼 불면의 밤을 안겨 주곤 하던 고질병이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어쩔 수 없이 떠났던 알프스 산록과 알름할아버지를 그리며 몽유병자가 되어 어두운 도시의 밤을 헤맸던 것처럼, 소음과 빛 공해로 잠을 깬 불면의 밤은 자주 어두운 창가에 서서 실루엣처럼 먼 산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연출시키곤 했다.

바벨탑처럼 하늘 끝 모르고 솟아오르는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검게 누워 있는 아스팔트,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는 보도 위의 분주함, 그리고 안면을 괴롭히는 밤의 빛 공해는 오랫동안 탈()서울의 염원을 내 안에 키워 주었다.

젊었던 때 올라와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을 그 오랜 세월을 서울에서 사는 동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해 왔다.

그러나 때때로 다시 돌아가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고 싶어 했던 나의 고향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고 자맥질로 여름 한철을 보냈던 맑고 푸른 시냇물은 상류 신도시의 폐수로 탁하게 오염되어 더 이상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었고, 산자락과 들판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보내던 수양버들과 미루나무들도 이제 그 자취가 없다.

 

이리 저리 아무렇게나 뚫린 도로와 철도로 만신창이가 된 고향의 모습과, 발전개발로 땅값이 올랐다고 좋아하는 고향사람들이 낯설어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찾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들로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고향을 잃어버린 자, 곧 실향민으로 여기고, 어딘가 내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가야 할 곳을 오래 전부터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갖고 있는 실향의 아픔은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나 수몰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강하고 클지 모른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죽어가는 고향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고통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용인으로의 이주에 대해 주변의 친지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해 준 걱정은 사무실 출퇴근 문제였다. 용인에서 인천 공항까지 어떻게 출퇴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 달리 내가 생각한 사무실 출퇴근 문제는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용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공항 리무진이 한 시간 반 정도이면 펀하고 안전하게 나를 인천공항까지 실어다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야 했던 서울에서의 출퇴근의 고단함과 한 번의 탑승으로 바로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편리함은 더 이상 비교거리가 되지 않는다.

용인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고향의 전답 일부를 정리하여 이곳에 토지를 마련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작별의 인사를 행동으로 표현했던 셈이다. 산자락과 연결되어 값이 저렴한 대신 면적이 꽤 넓은 그 땅은 전원주택을 짓고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고 마련한 것이지만, 실제로 집짓는 일을 구체화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질변경과 주택 건축에 드는 자금 문제, 또는 건설업자나 주변인들과의 사이에 발생할지 모를 마찰과 갈등도 걱정이지만, 막상 집이 완성되었다 해도 이의 관리나 외딴 곳에서 겪게 될 적적함은 전원주택에 대한 나의 꿈을 무기한으로 접게 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전원주택의 꿈은 현실화하기 어려운 파랑새의 날갯짓에 지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원주택에 대한 계획을 접은 대신 그 대안으로 찾아 낸 것이 타운하우스라는 요즘 새롭게 개발된 주거형태였다.

타운하우스는 다세대 주택의 일종으로서 전원주택과 아파트의 장점을 살려 도시의 외곽에 많이 건설되고 있는 새로운 주거형태인데, 분양 가격에 비해 주거 면적이 넓어 도심의 좁은 이파트에 비해 훨씬 쾌적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일반 다세대 주택과 달리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지하에 넓은 면적의 세대별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창고나 헬스장, 혹은 서재로 사용할 수 있다. 푸성귀 등을 가꾸어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고, 집안에 사우나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이 타운하우스의 특징이다.

 

이 타운하우스에 이사와 처음 맞았던 아침의 황홀함을 나는 아직껏 잊지 못한다.

집의 신축 여부를 고민하는 동안 잠시 다른 빌라에 머물다 이사를 했는데, 이사 온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창호 미닫이문을 열었을 때, 푸른 소나무 숲에 찬란하게 일렁이던 맑은 햇빛이 내 눈에 한가득 밀려들어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친 도시생활에 지쳐 있던 내게 천국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황홀하고 엄숙한 광경이었다. 내가 이제껏 살아오며 한 시도 잊지 못했던, 그리고 언제나 돌아가고 싶어 꿈속에서조차 애를 태우며 그리워했던 고향의 모습을 거기서 다시 찾은 듯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도시와 전원의 중간에 아주 절묘하게 위치해 있다. 집을 나와 광장 끝에 서면, 용인 시청 건물과 버스터미널, 그리고 도심의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러나 발길을 다시 뒤쪽 숲으로 돌리면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고즈넉하게 펼쳐진 전원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 살면서 가끔씩 스스로 놀라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꿈꾸며 살고 싶어 했던 그 곳에 내가 실제로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이다. 도시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 그러면서 관세사라는 나의 생업에 아무런 지장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이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다.

 

서울에서 살 때는 자전거 도로로 들어서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 가야하고, 복잡한 건널목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기만 하면 바로 사통팔달로 이어진 자전거 길을 달릴 수 있다.

자전거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가톨릭 수녀원과 피정의 집이 나타나고, 그 피정의 집 못 미쳐 오른 쪽에 넓고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다. 듬성듬성 낚시용 좌대들이 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어 호수 주변은 언제나 고요하다. 이 호수에 도착하면 헨리 D. 소로우 월든 호숫가를 거닐며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인으로서의 행복을 사색했던 것처럼, 나도 뒷짐 지고 천천히 거닐며 그의 사색을 흉내 내어 보곤 한다.

 

호수는 하나의 경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地形)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호숫가를 따라 자라는 나무들은 눈의 가장자리에 난 가냘픈 속눈썹이며, 그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과 낭떠러지들은 굵직한 눈썹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의 본문 중에서

 

이곳 용인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질식할 것 같은 도심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사방이 환하게 트여 있는 전원에서 생활 하는 동안 나는 절제된, 그러나 한없이 자유로운 마음의 행복을 느낀다.

내년이면 내 나이도 곧 칠십. 버둥거리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정리하고 이제 새롭게 맞게 될 일몰(日沒)의 시간들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 정리와 준비의 시간들은 내가 살아 왔던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알차고 행복한 순간들이 될 것이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몰의 시간에 찾는 행복-.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것이 내 전 인생에서 가장 값진 행복이고, 그것을 나는 지금 이 용인에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