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삶, 걸어가는 길
관우산악회, 동해 한섬 감성바닷길 이야기
* 유투브 검색창에 "관우산악회+삶을 따라 걷다" 치면 보실 수 있습니다. (ctrl+v, ctrl+v)
https://youtu.be/xJZgMGRlruU?si=f5RLlABJV2yxYkrD

다시 모인 길동무들
2025년 6월 26일 아침 8시,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인근의 작은 공터. 전직 관세청 선후배들로 구성된 관우산악회 회원 42명이 전세버스에 하나둘 올라탔습니다. 각자의 현장을 떠나 이제는 삶을 관조할 시기에 접어든 우리가, 다시 같은 길을 걸어보자며 모인 특별한 자리였어요.
목적지는 동해시의 한섬 감성바닷길 . 초여름 바닷바람에 실린 그 이름처럼, 시원하고 맑은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주는 선물
예정보다 조금 늦은 정오 무렵, 버스는 동해시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점심식사로 허기를 달랜 후, 이른 새벽부터 움직인 터라 모두의 얼굴에 묻어 있던 피곤함도 곧이어 펼쳐진 바다의 풍경 앞에서는 말끔히 사라졌어요.
한섬(寒島) 이라는 이름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이 해변은, 북적이는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송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기암괴석 사이를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멀리 묵호등대가 시선을 붙드는 풍경. 모든 것이 발걸음을 조용히 멈추게 만들었죠.
감성을 두드리는 산책로
감성해변에서 고불개 해변까지 이어진 길은, 솔향기 물씬 나는 감성을 두드리는 산책로였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익숙한 얼굴들과 눈빛을 나누고, 짧은 웃음과 회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그런데 한 언덕을 넘는 순간, 예기치 않은 풍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바닷가 언덕 위의 뜻밖의 만남
금발 머리에 목도리를 두른 소년과 나란히 앉아 있는 여우, 그리고 그 옆의 우물. 바닷가 언덕 위, 파도 소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어린 왕자』 속 한 장면이었어요. 조형물 앞에는 어떤 안내문도 설명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국적인 형상이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의외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사막 한가운데서 여우를 만나고, 길들임의 의미를 배우죠. 여우가 말합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우물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이자, 마음으로 보아야 보인다 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오래된 정이 흘러가는 시간
그 소년과 여우 앞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마치 수십 년을 함께해온 우리 선후배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어요.
말없이도 마음이 전해지고, 오래된 정이 묻어나는 그런 시간. 한섬의 찬 바람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조용히 되물어오고 있었습니다.
관해정에서 바라본 내면의 풍경
조선시대 선비들이 동해를 바라보며 사유를 펼쳤던 관해정(觀海亭) 처럼, 우리 또한 그날 그 바다 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관해정은 지금도 한섬 해변 산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그 자리에 서니, 옛 선비들이 풍광 속에 담았을 깊은 사색이 절로 떠올랐어요. 해변 단애에 겹겹이 쌓인 암석층처럼 드러난 시간의 흔적과 내면의 흔들림. 동해 한섬은 우리 각자에게 그런 우물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작가의 마음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의 조종사로 하늘을 날던 작가였죠. 실제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던 그 경험 속에서, 외로움과 갈증 가운데 존재의 본질을 탐색했습니다. 그 끝에 『어린 왕자』를 써 내려갔어요.
사막에서 만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 네 장미꽃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든 거야",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한 우물의 의미까지. 그의 이야기엔 비행보다 깊은 사색이, 항로보다 넓은 마음의 풍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이야기가 이 낯선 동해 바닷길과 만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찬 우물에서 퍼올린 깨달음
한섬(寒島)은 마치 찬 우물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올려 등목하듯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서산에 걸렸는데 갈 길은 아직 멀다는 그 마음. 허투루 보낸 시간들이 아깝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는 아쉬움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간절한 다짐이 마음속 깊이 일어났어요.
그 조용한 바닷바람은 어느새 우리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어요.
집으로 가는 길에서
푸른 동해바다를 뒤로하고, 버스는 서울로 향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창밖으로는 고요한 들판과 바람이 스쳐 지나갔어요.
마음속에는 문득 노사연의 노래 『바램』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마음속 한섬을 찾아서
고불개 해변의 어린 왕자는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자화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삶의 어느 고비마다 마주치게 되는 그 한섬 의 찬 우물은, 우리가 끝내 되짚어야 할 내면의 깊이이기도 했습니다.

?? 3줄 요약전직 세관 선후배들로 구성된 관우산악회 42명이 동해 한섬 감성바닷길을 함께 걸으며 인생의 여운과 관계의 깊이를 되새긴 하루.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 - 어린 왕자 중에서
아래는 동해 한섬 감성 바닷길 트레킹 모습을 담은 유튜브와 팟캐스 입니다.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571/episodes/2515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