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교훈 "탈리오 법칙"
김재석/관세사/한국사마천학회이사
7월 첫날, 호구포 전철역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하는데, 한 할머니가 길을 묻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건강보험공단을 찾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바쁜 출근길이어서인지 다들 모른다며 어색하게 웃고는 그냥 지나쳤죠.
할머니에게 다가가 "저를 따라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구원의 손길을 만난 듯 반가운 표정으로 제 뒤를 따랐습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건너편 큰 건물이 LH 공사 건물이고 그 안에 건강보험공단 사무실이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위를 둘러보시며 "아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간판이라도 제대로 붙여놔야지, 왜 이렇게 찾기 어렵게 해놨어?"라고 하셨어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예전에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가다 사무실 근처인데도 안내판이 없어서 나도 한참을 헤맸던 적이 있었거든요.
건널목을 함께 건너며 연두색 유리창이 반짝이는 큰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예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고는 지팡이를 짚으시며 그쪽으로 향하셨습니다.
?그 순간, "잘 가세요! 할머니"라고 하며 "80쯤 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할머니 얼굴이 굳어지고, 눈빛엔 차가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단호하게 "79살이야"라고 자신의 나이를 콕 집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차, 말실수를 직감한 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보려 웃으며 "제 나이는 얼마나 돼 보이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70은 훨씬 넘었겠구먼!" 한마디 내뱉고는, 뒤도 안 보고 휙 돌아서 가버리셨습니다.
평소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는 그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천 냥 빚을 지게도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내가 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이미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게 이렇게나 쓰릴 줄이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골목 저편으로 점점 멀어져 갔고,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음엔 말조심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죠.
출근길에 할머니와 겪었던 일이 떠오르니,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옛날에 한 늙은 선비가 과일가게에 들렀는데, 상인이 이 과일은 백 년 동안 젊음을 유지해 줍니다! 라고 했대요. 선비가 피식 웃으며 "그럼 백 년 뒤엔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물었더니, 상인이 슬쩍 웃으며 "선비님은 백 년 후에나 노인이 되겠네요." 했답니다. 상인의 재치에 선비는 감탄해서 과일을 몽땅 샀다는 이야기였죠.
또 오래전에 읽은 소설 한 구절도 떠올랐어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마디 말이 던져지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 그 말은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말의 무게와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평소에도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그때 내가 할머니 나이를 물은 건 정말 무심코 한 말이었어요. 할머니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 순간 깨달았죠. 다른 사람, 특히 노인에게 나이 들어 보인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걸요. 그걸 내가 간과했던 겁니다. 그때 할머니 나이를 겨우 1살 더 덧붙였을 뿐인데, 할머니는 제 나이를 터무니없이 올려서 몇 배로 되갚았죠. 의도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상황이었어요. 내가 제대로 당한 셈이죠. 그래서 그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 같아요.
오늘 출근길, 그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문득 그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 큰 교훈을 주셨죠. ‘탈리오 법칙,’ 그날 얻은 뜻밖의 교훈이었어요. 건널목을 건너며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정말 절대로 나이에 관해 묻지 않겠다고요. 특히 60세가 넘은 분들에게는. 자칫 잘못하면 내가 80살로 보복당할 수 있으니까요!
길을 찾으시는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시작된 7월 첫날 출근길, 그날의 교훈은 단순하고도 명쾌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천 냥 빚을 지게도 한다는 것.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그리고 탈리오 법칙 대로, 내가 던진 말이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는 사실이었죠.
앞으로는 묻지도 않는데 나이가 얼마쯤 보인다. 라는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 진지하게 자신의 나이가 얼마쯤 보이느냐고 물으면…. 음, 그땐 그냥 20대라고 대답해야겠어요. 20대를 안 거쳐 본 사람 없잖아요? 20살 전에 죽은 사람 빼고는요.
*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이 법칙은, 고대 바빌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경 함무라비 왕이 제정한 함무라비 법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죠.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혹은 반좌법(反坐法)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똑같이 되갚는 법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임신한 여자를 때려서 임신부와 태아가 죽으면 가해자의 딸을 사형에 처한다.” "의사가 수술하다 환자가 죽으면 의사의 팔을 자르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아들의 두 손을 자른다." 그중 건축 관련 사례도 있는데 "집이 무너져서 집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건축가의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등입니다. 3,700년 전에도 심풍아파트나 순살 아파트 건축업자가 있었던 것 같네요. 참 흥미롭고도 무시무시하죠?
하지만, 이런 법이 고대에만 머문 게 아닙니다. 2011년, 이란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이슬람 종교 율법 샤리아법이 적용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황산을 여자의 눈에 뿌려 눈을 멀게 한 사건이었지요. 결과는? 탈리오 법칙에 따라 실제로 그 남자의 눈에도 황산을 똑같이 부어 처벌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말 그대로 눈에는 눈 이죠! 현대에도 탈리오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면서도, 냉혹함을 느끼게 합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탈리오 법칙, 무시무시한 복수의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가해자에 대한 상응한 처벌을 통해 무제한의 사적 보복의 악순환을 막아 사회의 정의를 세우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제도였습니다.
(2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