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숨은 역사, 영해와 밀수
글 김재석
한국사마천학회 이사
지금관세사무소 관세사
바다는 오랜 세월 동안 밀수의 은밀한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해적이 창궐하던 고대부터 현대까지 밀수는 끊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영해 개념은 이러한 밀수를 막기 위해 탄생했는데 초기에는 국가의 밀수 단속력이 미치는 범위를 영해의 기준으로 설정하였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법학자 바인케르스훅(Cornelius van Bynkershoek)은 해양주권론에서 “국토의 권력은 무기의 힘이 그치는 곳에서 끝난다(terrae potestas finitur ubi finitur armorum vis)”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의 아주니(Azuni, D. A.)가 착탄거리 원칙(cannon shot rule)을 내세워 3해리설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대포 포탄이 날아가는 거리가 통상 3해리(5.6km) 정도였는데, 이 거리까지를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로 보고 영해라는 개념을 적용한 것이지요.
착탄거리 원칙에 따르면, 국가는 해안선에서 쏜 포탄이 도달하는 특정 수역까지만 주권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17세기 영국도 이 원칙을 적용해 해안에서 착탄거리 내의 배들만 단속할 수 있었으며, 이는 영해로 인정되었습니다. 이처럼 초기의 영해는 지금처럼 바다에 대한 국가의 배타적 주권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밀수를 단속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비롯된 개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 시대의 경우, 현재의 영해와 같은 개념은 없었지만, 해안가 봉수대에서 보이는 바다 끝까지를 조선의 바다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일종의 가시 거리설 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법학자 그로티우스는 1609년에 자유해양론(Mare Liberum)을 통해 공해 개념을 확장하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바다가 모든 국가에 열려 있어야 하며 특정 국가의 독점적 권한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이론을 편 것은 모국 네덜란드의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 강국으로, 바다의 자유로운 이용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당시 네덜란드보다 해양력이 약한 영국 등 각국의 영해 개념은 자국의 해안과 인접 해역을 통제하여 밀수와 같은 불법 활동을 막고 해양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공해와 영해 인식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충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제 해양 질서를 유지하고 각국의 경제적, 법적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입니다.
밀수는 국가의 세금을 회피하고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범죄 행위입니다. 역사적으로 밀수는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이루어졌으며, 각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단속 과정에서 세관원들의 고난과 희생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계 10대 해안 트레일로 꼽히는 프랑스 GR34는 원래 ‘세관원의 길(Sentier des Douaniers)’이었습니다. 이 길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관원들이 밀수 감시를 위해 해안을 따라 1700km에 걸쳐 순찰하던 고난의 흔적입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세관원 윌리엄 앤더슨은 Poole 세관을 습격한 악명 높은 밀수업자 호크 허스트 갱(Hawkhurst Gang) 일당에게 목숨을 잃었고, 20세기 초 미국의 해안경비대원 존 데이비스는 밀수선과의 교전 중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세관원이 밀수 단속 중 상처를 입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특히 1975년 여수세관 삼양호 사건에서 서정휴 세관원은 밀수꾼들의 칼에 찔려 희생당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밀수 단속의 위험성을 잘 보여줍니다.
현대의 영해 개념은 단순히 밀수 단속을 넘어서 경제적 이익 보호에 중점을 둡니다. 해양 자원 개발, 어업 권리, 해양 교통 통제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영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대륙붕 석유 탐사와 심해 해저 광물 자원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영해 개념은 더욱 중대한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밀수 수법은 더욱 대규모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밀수 단속 기술도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레이더, 위성, 드론 등의 첨단 장비를 활용한 감시는 바다를 빈틈없이 감시할 수 있게 하여 밀수 단속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AI를 활용한 장비가 도입되어 밀수 단속에 더욱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밀수 단속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밀수 단속은 단순한 직무가 아닙니다. 이는 국가의 경제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사명입니다. 많은 세관원이 이 사명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그들이 매일 수행하는 임무는 국가의 주권과 법을 수호하는 일이며, 이는 결코 가벼이 여겨질 수 없습니다. 현재의 영해 개념이 해안가에서 쏜 포탄이 밀수선에 도달하는 대포 착탄거리 원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세관원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