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관세사의 밀수 이야기 팟캐스트 : 현재 리버티호 와인 밀수 사건외 5건 에피소드 방송 중(계속 업데이트)
2025.5 현재 9개 밀수 및 관세 관련 에피소드 업로드
(아래 url 클릭 >>>>> 에피소드 듣기>>>>>>모두 보려면 전체보기 클릭)
http://www.podbbang.com/ch/1792571?e=25130746

리버티호 와인 밀수 사건: 불타오른 식민지의 분노
식민지 무역업자들과 세관원들 간의 긴장된 대치 국면 속에, 결국 한 와인 밀수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미국 독립혁명을 촉발시킨 유명한 리버티호 마데이라 와인 밀수 사건이 됩니다.
1768년 6월 10일, 존 핸콕 소유의 리버티호가 마데이라 와인을 싣고 보스턴 항에 입항했습니다. 세관원들은 이 배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와인 밀수가 발각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사건을 좌시하지 않았고, 리버티호를 압류했습니다.
배가 압류되자 성난 군중이 압류 선박이 있는 세관에 몰려와 항의하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세관장은 압류 선박이 군중에게 탈취당할 것을 우려하여 리버티호를 영국 군함 옆에 정박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오자 세관장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결국 리버티호를 지키던 영국 군함 롬니호를 타고 해군 요새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세관원들은 식민지 사람들의 분노의 주된 표적이었습니다. 1767년 영국에서 새로 부임한 세관장들은 현지의 격앙된 분위기에 놀라 본국에 관세 징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할 정도였으며, 여러 명의 세관원들이 군중에게 쫓겨 도시를 탈출하거나 영국군의 경호를 받으며 달아났습니다. 심지어 일부 세관원은 주민들에게 붙잡혀 폭행이나 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리버티호의 선주인 존 핸콕은 와인 밀수입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6개월에 걸친 핸콕의 재판은 영국과 식민지인들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영국은 이 뻣뻣한 인사 가 유죄 판결을 받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정부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세관의 무리한 수사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영국 정부는 소송을 취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식에 식민지 전역의 미국인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영국으로서는 낭패였지만, 이 사건으로 명성을 얻은 핸콕은 식민지인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핸콕의 승리는 식민지 주민들의 저항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해군 요새로 피신해 있던 세관장들이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호가 필요하다고 본국에 보고하자, 영국은 결국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군이 미국 땅을 밟자 미국인들은 더욱 분노했으며, 이는 결국 1년 반 뒤에 발생한 보스턴 학살 사건으로 이어지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리버티호 와인 밀수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밀수 사건을 넘어, 미국 독립혁명에 불을 댕긴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존 핸콕은 영국에 대한 저항의 상징 으로 떠올랐고, 후에는 대륙회의 의장이 되어 독립을 강경하게 주장하며 독립선언서에 최초로 서명하는 인물이 됩니다. 핸콕과 같은 부유한 무역업자들은 밀수 단속에 반발하며 건국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한 와인 밀수 사건이 어떻게 거대한 혁명의 불씨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