優曇跋羅一現
작성자 : 최용권 조회수 : 1062
등록일 : 2015-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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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별히 초청된 기사들이 활약하다가 우담화 처럼 덧없이 사라져갔다

 

2002년 중국기원은 갑조 리그를 외국의 초 일류급 선수들에게 개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상승가도를 달리던 저쟝의 신후(新湖)팀이 바둑의 신 이창호 9단을 가입시켰는데 매 판당 1만 위안의 대국료를 지급하기로 하여 외국기사들에게 주는 대국료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 9단이 역시 선쩐시위에양찬(深?喜悅洋參)팀과 대국료를 판 당 미화 1만 불을 받는 조건으로 진입계약을 하여 외국기사의 대국료에 대한 하나의 선례를 기록하였습니다.

 

중국기원은 60, 70년대 일본, 그 후의 한국바둑의 중흥에 내심 상심해 하던 차에 증가하는 국내 대회 수에 비해 기사의 수와 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초일류 기사가 중국의 갑조 리그에 초청되는 것을 대단히 반겼지요. 그러나 조훈현과 이창호 같은 선수의 갑조 리그 대국 수가 늘어남에 따라 다른 팀과의 실력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갑조 리그에 초청된 외국기사에 관한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지고 대체로 세계대회에서 1회 이상 우승한 기사를 초청하게 되면 중국바둑 갑조 리그에서 네 판 이상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새로 마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초청된 기사들은 팀에 속하지 않고서도 대회에 참가하고 정원을 차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수를 빌리는 것에 대해 제한을 가하였는데 매번 대회에 참가하는 팀에 소속된 해외초청 기사는 한 사람으로 제한하였고 선수를 차용한 기사는 두 명으로 제한하기에 이르렀지요. 이렇게 되어 2002년 저장 신후팀이 이창호를 가입시킨 후 또 일본기사 고노 까지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조훈현 9단과 일본기원의 임해봉 9단도 특별히 초청되어 각기 선쩐시위에양찬팀과 꾸이저우웨이쓰(貴州衛視)팀으로 중국 갑조리그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2003년 일본기원의 왕리청(王立誠)9단도 베이징 하이디엔이청(北京海淀?城)팀에 합류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갑조 리그가 외국기사들을 영입한 지 겨우 2년 후, 특별히 초청되었던 기사들은 중국 갑조 리그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요. 이렇게 퇴조가 빨리 진행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왜 그랬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기 현상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특별히 초청된 선수들이 상징적인 면만 두드러졌지 실질적으로는 한 개 리그전에 겨우 네 판만 출전하게 되어 있어 주장으로서의 성적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최고 스물 두 판을 소화해야하는 마라톤식 대진에서 초청된 선수가 설사 전승을 거두더라도 별로 승률에는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러한 초청 선수들이 새로 중국에 와서 급작스럽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창호와 임해봉은 2승2패, 조훈현만 겨우 3승 1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초청된 외국선수에게 주는 대국료는 판 당 미화 1만불이었는데 이기고 지는데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갑조 리그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초보단계였기 때문에 계약내용이 제대로 지속되지 못했지요. 스폰서도 아주 미미했고요. 저장의 신후 부동산그룹 같은 경우는 2002년 저장 갑조리그 팀과 계약할 시 매년 90만 위안 인민폐를 지원하기로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 초청 초기의 들떴던 분위기는 이내 식어 버리고 이창호의 대국료도 예상한 것 보다 적었으며 처음에 기대 되었던 대우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계속 중국에 남아 갑조리그의 기사로 활약할 실익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후 중국 갑조리그에 특별히 초청된 선수들은 처음에는 아주 귀한 존재였는데 중국기원 관계자들 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돌출되며 갑조 리그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담화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냇가의 자갈도 자기가 놀던 냇가에서 반짝인다고요?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국제화가 생활화 되어 버린 지금은 제도나 시스템 보다 개인의 초 인간적인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뒤 꾸이저우의 바이링 등 재력이 탄탄한 스폰서 기업이 갑조 리그를 지원하면서 갑조 리그 팀은 1만달러 시대에 정식으로 진입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승을 하지 않고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 선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끝).

 

(존경하옵는 관우회원 여러분, 먼저 양해를 구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5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하였던 바둑컬럼을 1,2회를 게재한 이후 오랜만에 3회를 올리게 된 점을 널리 이해 바랍니다. 4월부터 오산에 소재한 물류법인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시간을 내지 못한 관계로 연재를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4,5회는 중국의 황사 바람도 이겨낸 이세돌 9단의 활약상과 조직과 재정이 보강된 중국 갑조 리그가 일본과 한국에 이어 바둑의 중흥을 맞이하는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