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여행기 4편(사이공,프놈펜)
작성자 : 이수웅 조회수 : 1534
등록일 :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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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 토 맑음

북부 지역인 하노이에선 도착부터 계속 며칠은 비가 오고, 흐리고 맑은 날씨가 없었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니 연일 맑은 날씨다. 그러나 햇빛이 강렬하니 더운 것이 또 다른 문제다.

 

오늘은 사이공 시내관광을 단체에 참가해서 하기로,,, 840분 경 미니버스가 와서 픽업해서 다른 호텔을 몇 군데 둘러서 대충 25 명 정도의 각국 관광객이 같이 행동한다.

 

여기에 전시된 사진은 미국 시민들의 반전 데모 장면이 많고, 양민 학살 장면도 있고 ,승려들의 분신자살, 미군 병사들의 지친 모습, 사망자, 부상자 숫자 등 등....

이 사진을 보면 미국이 국민이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양민 학살을 저질렀고,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결론을 내릴 것 같다.

 

특이한 것은 한국군이 참전했다는 기록과 사진이 1-2 장 있고 간단히 한국군도 참전했다고 한 줄 있는데 아래에 친절하게도 일본어로 총 몇 명이 참전했고 전사자가 몇 명이라는 것이 일본어로 쓰여 있다. 다른 사진은 베트남어와 영어 설명만 있는데 이 사진만 일본기자가 쓴 것이라서 의도가 궁금하다. 누가 검토해 보았으면 해서 해당부분만 사진을 붙였다.

 

 

오후에 둘러본 월남 대통령 궁도 무심히 볼 수 없는 시설이다. 대통령 집무실, 회의실 등등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도 패한 월남은 우리에게도 좋은 반면교육이 된다. 정신무장이 허술한 군인은 우수한 무기를 보유하고도 패망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오후에 관광한 도교 사원, 성당, 우체국 등 등....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저녁은 가이드가 소개한 Broken rice를 먹자고 소개한 식당을 찾아갔다.

이 식당은 요리 그림도 같이 있어 선택하기 편리하고 맛도 좋고 가격도 비싸지 않네, 나는 Broken Rice를 주문 .. good .., 모두들 여기 한 번 더 와서 오늘 먹지 못난 요리 먹자고 합의 하고 , 외국에 오면 관광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그 곳만의 요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Package 여행이면 정해진 대로 먹여야 하지만 우리는 자유 여행이니 마음대로 선택해서 먹은 것이 아주 좋다. 더구나 가까운 친구들과 여행하니 새로운 요리를 주문해서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웃고 넘어가니 걱정할 것 없다.

 

45일 일 구름

오늘도 단체 관광단에 합세하여 구찌 터널(Cu chi )을 보러 갔다. 가이드는 머리카락이 매우 긴 히피처럼 생긴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남자인데 인상은 별로인데 영어는 유창하다.

자기는 1951년생이고, 월남전 때 월남군 중위로서 미군 통역장교를 했고,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왔을 때 회의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면서 한 맺힌 듯 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가 한 말 중에서 내가 메모한 것만 두서없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베트콩은 원래 프랑스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했는데 북쪽에서 전쟁한 베트민은 독립을 했는데 남쪽은 미군이 개입하여 친미정권을 내세웠으니 미군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계속한 것이다.

미군이 북쪽을 폭격하면 거의 성공이나 남쪽을 폭격한 것은 거의 오폭이었다.

전쟁 중 죽은 베트콩은 군인이 100만이고 민간인이 250만 명이었다.

2차 대전에 사용한 폭탄이 700만톤인데 베트남전쟁에 사용된 폭탄은 1,400만 톤이었다.

두옹반민도 베트콩이었고, 응우옌 까오. 키의 동생도 베트콩이어서 전략회의를 하면 수 시간 이내에 베트콩에게 전달되었다.

 

맥나마라는 고엽제의 성분을 비료를 농축한 것과 같아서 식물의 잎을 마르게 할뿐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고 말했으나 고엽제를 뿌린 지역은 그 후 10년 동안 모기도 없었다.

나는 맥나마라가 거짓말을 했고, 화학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미군은 고엽제(Agent Orange)200만 리터 사용했는데 미군들도 옷에 묻은 고엽제를 손으로 털고 다녔다.

고엽제를 뿌린 지역의 주민들은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베트남의 인구가 40년 전에 4200만 이었는데 지금은 9200만이다. 인구의 50%이상이 40세 미만이다.

종전 후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감옥에 안 갔으면 누구에겐가 살해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대위는 5, 대령은 15년 감옥살이하고 석방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구찌터널의 이야기

이런 터널이 수없이 많은데 지역명이 구찌라서 여기터널을 구찌터널이라 한다.

땅굴은 북한에서 뚫었다는 제3땅굴과는 개념이 달랐다.

구조나 크기가 개미굴을 확대한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보다 실제에 가까울 것 같다.

 

땅굴의 위장술,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고, 각종 부비트랩, Sniper, 등 등... 사이공 인근의 땅굴의 총길이가 240km나 된다고 하는데 바구니와 호미 같은 농기구만으로 이런 땅굴을 만들어서 세계 최강의 미국 육, 해 공군과 싸워서 이겼다니 대단한 민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군도 베트콩의 원시적인 부비트랩에 많이 희생되었다고 그가 말했다.

관광객에게 허용된 10 20m의 땅굴 속을 통과하는 경험도 했고,,,,

이런 굴속에 숨어 있다가 미군이 헬리콥터에서 내리면 땅굴 뚜껑을 열고 상반신만 내어 놓고 조종사나 지휘관 한명만 조준 사격하고 숨어버리면 바로 옆에 있어도 찾지 못하고 총알이 어디에서 날라 온지도 모르고 혼란에 빠진다고 했다.

오늘은 직접 월남전에 참전한 장교 출신을 만난 것은 행운인데 영어도 유창해서 서양인들을 웃길 정도이고, 그러나 종전 후 밀물처럼 밀려온 외국인 투자 물결에 유창한 영어 실력을 겸비한 분이 어찌 아직 가이드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다.

같이 동승한 외국인들이 없다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많이 질문할 수는 없어서 아쉽다.

여기서 혼자 생각해보았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한 것은 도미노 이론을 근거해서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막자는 것이었는데, 월남은 공산화가 되어도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니 공산화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닌가?

 

지금 베트남이 공산주의를 한다고 해서 우리나 미국에 무슨 불이익이 있는가? 그때 소련이 해체될 줄 알았더라면 월남전에 개입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세계역사를 30년만 미리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3시 쯤 시내로 돌아와 늦은 점심은 어제의 그 식당에 가서 어제와 다른 요리를 주문했는데 문제는 그림에 있는 양보다 실제는 더 적게 나오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풍성한 양을 기대한 사람은 약간 실망이고 양이 적어도 좋은 사람은 O.K 이고.

지금 호텔은 방이 너무 좁아서 이동하기로 하고 찾아간 곳은 Happy Inn 이라는 곳.. 방이 넓어서 좋다. 내일 프놈펜 행 버스표를 사야 하는데 일요일이라 여행사가 문을 닫아서 큰일이네..

 

사이공 마지막 밤의 저녁 식사는 걸어가다 우연히 특별한 식당을 발견했는데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곳 같고 요리를 직접 보고 고르면 서비스해 주는 식이다 . 밥은 따라 나오고..

 

우리는 각각 다른 요리를 두 가지 씩 시키고 기다리니 제법 풍성한 요리가 나온다. 사이공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맥주를 시키고 한 잔 씩 하면서 잡담을 나누고.,,,탁월한 선택이라고 자화자찬, 베트남 음식은 우리에게 별로 거부감이 없고 태국 요리보다 더 좋은 것 같다.

2 주일을 연속으로 매일 3끼 먹어도 불평이 없으니 이번 여행 멤버들은 모두 식성이 좋은가?

 

 

 

 

46일 월 구름 맑음 비

이번 호텔은 방은 크고 좋은데 아침 식사가 별로군 ,아침 식사는 7 시까지 준비해달라고 어제 분명히 말하고 O.K 했는데... 7 시 넘어도 소식이 없어 독촉하니 지금 외부에 주문하면 곧 배달된다고 한다. 자기들은 식당이 없어서 외부 식당에서 가져온다고 하면서,..

뒤 늦게 배달된 음식도 지금까지 조식 중 최악이다.

10시 버스 타려고 택시로 Kumho-Samco terminal로 갔는데 한국의 금호와 여기 회사가 합작으로 세운 회사인 것 같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상한 한국의 버스 터미널이 아니고 그냥 도로이고 작은 사무실만 보이니 혹시 잘못 온 것인가? 의심이 들지만 주소를 보니 틀림없고 사무실에 문의해도 여기라 한다.

출발 시간이 되니 버스가 한 대 도착했는데 예상 외로 새 차이고 좌도 넓다. 출발 후 사이공 시내를 지나면서 몇 군데 더 정차해서 손님을 싣고 가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시내를 빠지는데 1 시간 넘어 소요되는 듯하고 2-3 시간 달리니 국경이다. 모두 하차하여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를 별도로 받았지만 캄보디아 입국 심사에는 버스표 구입할 때 지불했기 때문에 빠르다. 급행료 안주면 몇 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입국 심사 끝나니 식당에서 점심인데 어제 저녁처럼 메뉴를 선택하면 밥은 따라 나오고 승객들이 모두 여기서 식사하니 승객들이 점심 식사 끝난 후 바로 출발이다.

캄보디아 국경선 근처엔 고급 호텔과 카지노가 더러 보이는 것으로 보아 도박 즐기는 베트남 부유층 손님들을 위한 위락 시설 같고, 이어서 나타나는 캄보디아 시골은 가난한 티가 묻어있다. 산은 보이지 않고 평야가 계속되니 역시 농업이 발달한 것 같고 인상에 남는 것이 메콩 강 다리이다. 일본 자본으로 건설했는지 일장기와 캄보디아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다리에는 양국 국기를 조각 한 것이 보이며 개통한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다리 위에는 구경 나온 사람들도 많다.

일본이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죽자하고 일본을 성토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가 필요시 누구 편을 들겠는가?

 

6 시간 후 프놈펜에 도착하니 여기는 택시가 거의 없고 툭툭이라고 불리는 것이 많은데 오토바이 뒤에 4인용 좌석을 달고 다닌다. 버스 도착 후 우리도 툭툭 2 대에 나누어 타고 호텔로 달리는데 도중에 앞에 가던 일행이 탄 툭툭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도 영문도 모르도 따라가니 나중에 들었지만 팀장이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렸기에 다시 되돌아가 살펴보니 그대로 있어서 천만다행으로 지갑을 가져올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 지갑에는 우리들의 공금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분실했다면 큰돈을 잃어버릴 뻔 했다.

예약한 Diamond hotel에 오니 호텔 입구에 Cafe 간판이 붙어 있다. 문에는 close로 되어 있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툭툭이 기사는 곧장 들어간다. 여기가 틀림없다고 들어오라고 손짓하여 들어가니 호텔 1 층 라운지를 카페로 운영하고 카페 카운터가 호텔 reception desk이다.

close 는 반대 면에 있는 open을 잘못 걸어놓아서 생긴 착오이고, 여기서는 이런 일이 가끔 생기는지 별로 개의하지 않는 눈치다.

 

짐을 풀고 근처의 한국음식점에 가니 김치찌개, 우렁 된장찌개가 각각 $6 이라.. 비싼 편이지만 한국 떠난 후 처음으로 한식을 먹자하여, 다른 친구들은 모두 김치찌개 나는 된장을 주문하니 된장이 더 맛있다.

계란찜도 나오고 밑반찬도 세련되고 커피까지 나오니 고급인 듯하다.

 

47일 화 맑음

오늘은 프놈펜 시내 관광을 한다면서 벤을 $70에 빌렸고 시간은 9-오후 6시까지.

Killing field 와 박물관,,, 둘 다 비슷한 것들인데 Killing field에서는 양민을 사살해서 매장한 곳이고 박물관은 당시 양민을 잡아와서 고문하고 가두어 둔 감옥을 박물관으로 바꾼 건물이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서 $20/1(여기는 외국인들에게 입장료를 많이 받는다) 박물관이 어떤 공장 건물 같아서 처음엔 순간적으로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허술하다 원래는 학교 건물인데 크메르 루주 시절에 감옥과 취조실로 사용 했다고 한다.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는 자신이 교사 출신의 지식인이면서 농업 이상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 아래 농부가 아닌 교사. 의사. 법조인 , 성직자 등 등 ...지식인을 무조건 처형했다고 한다. 심지어 안경을 써서, 손이 부드러워서 , 피부가 곱다고.....

박물관 안에 있는 각종 고문 도구들 , 감옥 속의 일부 양민의 사진, 처음 잡혀 와서 찍은 증명사진, 여기 있는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처형되었다고 한다.

특히 증명사진 속의 표정 표정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맑고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들이 지식인이라 그런가?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공포에 질린 눈망울, 모든 것을 포기한 절망감도 숨어 있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프놈펜 시민들을 3 일 내 전부 도시를 떠나라고 했다니, 그리고 죄 없는 양민을 무려 2-3백만을 죽였다니..

이런 비인간적인 정권에 서방에서 원조까지 해 주었다니 선진국에서는 당시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외국인들의 표정은 모두 어둡고 말이 없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도 살아남은 몇몇 노인들은 박물관 안에서 작은 수공예품을 팔고 있고....

베트남은 전쟁으로 수백만이 희생되었고 여기 캄보디아는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세계 대전에서 희생된 숫자와 비슷한 인명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단 기간에 희생되다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툭툭 기사가 안내한 식당은 고급이고 가격이 모두 $로 표시되어 있는데, $6 -$10 , 여기 물가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시내 식당에서 US$로 음식 값을 표시하다니 이상하다. 후에 알았지만 캄보디아에선 미국 달러가 거의 공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오후에는 왕궁을 관람했는데 시아누크 아들이 현재의 왕이라고 한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 사진이 3장 걸려 있는데 시아누크. 부인, 현재의 왕 .이렇게 3 명이다. 왕궁은 건물도 깨끗하고 나무, 잔디 등 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방콕의 왕궁과 비슷하다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가니 너무 더워서 관광도 힘들고 더위 먹을 지경인지라 호텔로 오는 길에 망고를 $5 어치 사니 6 명이 싫건 먹겠다.

저녁 식사 후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강변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문제는 길을 건너갈 때인데 워낙 차와 툭툭이가 엉켜서 줄 이어 오니 건너갈 틈이 없다. 그래도 천천히 야금야금 건너가야지 완전히 그친 후 건너가려 한다면 종일 있어도 건너갈 수 없겠고... 이런 무질서 속에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또 내기다 누군가 말하기를 열대야는 28도 이상이어야 한다. 아니고 25도 이상이 5일 이상 계속되어야 한다. $1 씩 내기다.

 

48일 수 맑음

버스가 8시에 호텔로 직접 와서 우리를 Pick-up 하겠다더니 툭툭 2대가 와 우리를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간다고 한다. 당초 830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9시 넘어서야 버스가 오니 여기 버스는 기차와 달리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 현대 로고가 붙었으며 좌석은 넓어서 좋고 빈자리가 많아 승객이 적은 듯... 터미널 벗어나서도 중간 중간에 승객을 태우고 어느 베이커리 점 앞에서 정차하여 구입하도록 배려하니 아침을 먹지 못한 우리 팀에겐 좋은 기회인지라 몇 명이 내려서 먹을거리 구입하고...여기서는 베이커리가 고급으로 인기가 있는 듯...

 

비포장도로가 많고 포장된 곳도 관리가 부실한지 많이 파손되어 있어 속력을 내지 못하는 것 같고,,, 1 시 쯤 어느 소도시에 정차하여 점심시간을 주니 근처 식당 2 곳을 둘러보고 손님이 많은 식당으로,,.들어가니 놀랍게도 식당에는 서양인들이 가득하다

볶음밥. 국수 등 ,,,입맛대로 시키고 맥주도 시키고 커피도 주문 맛있게 먹고 난 뒤 다시 출발이다.

캄보디아는 산이 거의 보이지 않고 계속 평야지대가 이어지니 6 7 시간을 달려도 산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겠군. 농촌의 집은 대부분 나무집 2층 구조인데 1 층은 그냥 기둥만 있고 거주 공간은 2 충에 있는 듯...

 

툭툭 2대에 나눠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니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시내와 앙코르 왓 중간 지점이다. 여기는 베트남과 달리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캄보디아 인들이 영어를 조금씩 해서 편리하다. 툭툭 기사, 식당, 가게 등 등 거의 모든 곳이 간단한 영어를 하고 US$가 공용되니 편리하다.

 

호텔은 객실은 많지 않지만 방이 넓고 ,깨끗하며 무엇보다 각종 장식품이 많이 보이는데. 꽃 장식도 많고 ,침대 위에는 얇은 망사로 둘러쳐서 고급스럽게 보이고 심지어 풀을 잘라Welcome 이라고 쓴 것도 보이며 종업원의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저녁을 먹으려 툭툭 타고 시내 행 Pub street 란 곳에 가니 여긴 별천지 같아 어떤 선진국 밤거리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조명도 세련되어 있는데 세계적인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 일행이 음료수를 마셨다는 Red piano도 있어 더욱 분위기를 돋우고 우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캄보디아 BBQ를 맛보기로 합의, 우선 생맥주를 주문하니 300cc가 단돈$0.50, 매우 저렴하다. . 여기 BBQ는 우리의 샤브샤브와 비슷한데 들어가는 것이 풍성하여,,,생선, 소고기, 닭고기, 개구리 고기, 새우, 국수, 야채 등등 ..... 마음껏 마시고 배 불리 먹고 계산하니 $49 , 모두 O .K.

 

호텔로 가는 툭툭을 타야하는데 올 때 한 대에 6명이 끼어 앉아 $3에 왔으니 돌아가는 편을 누구든지 더 싸게 흥정해봐라...... 처음엔 $6에서 결국은 $3 까지 내렸고, $2을 부르니 그러면 2대로 가라, 한 대로는 $3 이 최선이다. 더 이상 흥정하려니 근처의 툭툭 기사들이 몰러 나와서 항의하니 역시 $3 이하는 불가했다.